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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1/"화성 용의자, 감방서 女사진 10장 보관…가학 성욕 강렬" -당시 사건 23년동안 보관한 사상열 경김

보도국 | 기사입력 2019/09/20 [09:48]

속보1/"화성 용의자, 감방서 女사진 10장 보관…가학 성욕 강렬" -당시 사건 23년동안 보관한 사상열 경김

보도국 | 입력 : 2019/09/20 [09:48]

 

화성연쇄살인사건 결정적 증거 23년 보관한 사상열 경감 인터뷰

1990년 9차 사건부터 화성 과학수사팀 근무하며 증거보관
"경찰의 일념과 과학의 승리...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경찰이 33년 만에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유력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었던 결정적 증거는 1990년 발생한 9차 사건 피해자 김모(당시 14세) 양의 속옷에서 검출된 용의자 이춘재(56)의 유전자(DNA)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씨의 DNA 정보는 2011년 10월 채취해 이듬해 1월 DB에 등록된 것으로 많은 시민이 화성 살인사건의 범인을 끝내 잡고야 말겠다는 경찰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특히 오산과 화성, 수원 경찰 관계자들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 당시 감식 요원이었던 현 오산경찰서 세교지구대장 '사상열 경감'의 자료보관에 대한 열정을 높이 사고 있다. 23년 동안 증거자료가 잘 보관될 수 있었던 공로를 인정해서다.

다수의 경찰 관계자들은 "공소시효가 지나고 자료를 보관하지 않을 수 있었음에도 15년 가까이 범인을 검거하겠다는 경찰들의 일념을 담아 끝까지 자료를 훼손하지 않고 잘 보관한 사상열 경감의 열정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사상열 경감은 공로를 모든 경찰에게 돌렸다. 그는 19일 뉴스핌과의 인터뷰에서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다음은 사상열 경감과의 일문일답이다.

현재  경기 오산경찰서 세교지구대장을 지내고 있는 사상열 경감.

2019.09.19

- 화성 연쇄살인 사건 당시에도 과학수사팀을 맡았었나.?

▲이번 용의자를 특정한 결정적 증거였던 9차 사건 때부터 화성경찰서 감식 요원을 담당했었다. 2013년까지 23년 동안 감식 요원으로 출발해 화성경찰서와 화성동부경찰서 과학수사팀장을 지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진행되는 도중 사건을 맡았지만 처음 업무라 많이 긴장했었다. 다행히 당시 제 업무를 담당했던 박한식 경기지방청 감식 요원으로부터 감식방법을 배워나갔던 기억이 난다. 가장 많은 도움을 받았고 감식의 정석을 배울 수 있었다.

- 33년 동안 증거를 잘 보관해 유력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었다는데.

▲과학수사팀을 떠난 건 2013년이다. 그 이후 과학수사팀 담당자들이 증거자료를 잘 보관했기 때문이지 내가 칭찬받을 일은 아니다. 그리고 2010년 시행된 DNA 신원확인 정보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살인과 성폭력 등 재범 위험성이 높은 11개 범죄군·형확정 자의 DNA를 채취해 DB에 등록해 보관할 수 있었던 것도 큰 몫을 한 것 같다. 과학의 승리다.

- 당시 감식 요원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것은?

▲처음 감식 요원을 하면서 사건을 맡은 9차 사건이다. 당시 피해자인 14살 김모 학생은 1990년 11월 15일 야산에서 안타깝게 시신으로 발견됐었다. 모두 마음이 참담했었다. 그 당시 그 학생의 옷 등 소지품을 보관하면서 마음을 추슬렀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그 증거물이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유력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었던 첫 결정적 증거였다니 감사하다.

화성연쇄살인사건 사건 지도 [그래픽=홍종현 미술기자]

- 과학기술이 많이 발달했다. 사건 당시와 비교하면.?

▲그 당시에는 유전자 분석기술을 꿈에도 생각 못 했다. 컴퓨터도 핸드폰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과학수사'라는 명칭변경도 화성 연쇄살인 사건 공소시효가 끝나기 1년 전인 2005년부터였으니 이전에는 수사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미궁에 빠지면서 경찰은 처음으로 DNA 수사기법을 도입했다. 10대 여학생이 살해된 ‘8차 사건’ 당시 용의자에게서 채취한 DNA를 일본에 보내 감식했는데 아쉽게도 범인을 찾는 데는 실패했다. 다행히 그 당시 도입한 DNA 수사기법으로 현재 유력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게 됐다. 과학 수사기법의 눈부신 발전 덕분이다. 이제는 1ng(나노그램)의 DNA를 증폭해 감정하는 기법이 쓰이고 있는데, 이는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수준이다. 사건 현장에 남아있는 극미량의 흔적만으로도 피해자와 용의자의 DNA 확인할 수 있게 됐다.

- 유력용의자 특정 내용은 언제 접했나? 소감은.
▲일반 시민과 똑같이 18일 오후 보도를 통해 내용을 접했다. 그 당시 찾지 못한 DNA를 찾았구나 생각했다. 완전범죄는 없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 순간이었다. 항상 지금은 못 잡아도 언젠가는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자료보관을 해왔었는데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반드시 범인을 잡겠다는 경찰들의 염원이 하늘에 닿은 것 같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우리 경찰 가족들이 힘을 모아 반드시 범인을 검거하길 바란다.

 

 

 

 

 

 

 

 

 

 

 

한편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가 화성연쇄살인사건 유력 용의자의 가학적 성욕망이 여성을 향해있다고 설명했다.

20일 이 교수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화성연쇄살인사건 유력 용의자에 대해 이처럼 분석했다.

 

이 교수는 용의자가 여성 사진을 갖고 있다는 설명에 "교도소 내 음란물 사진은 금지. 굉장한 위험 부담을 안고서 그걸 보존했다는 얘기는 성도착에 해당하는 가학적인 성적인 욕망이 강렬하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화성연쇄살인사건 유력 용의자는 19일 교도소 수감 중 여성 사진 10장을 본인 사물함에 넣어두고 보관한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화성연쇄살인사건 유력 용의자가 1급 모범수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대중들을 놀라게 했던 점에 대해서 이 교수는 용의자의 포악한 면이 여성에게 한정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용의자의) 자극은 아주 연약한 여성, 그렇기 때문에 여성에게만 포악한 습벽을 드러낸다. 자기보다 체격이 큰 남자 수용자들, 교정직원들 사이에서는 폭력성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없었을 것"이라며 "교도소 안에는 (욕구) 대상자가 없다. 그러나 출소를 하게 되면 상당부분 문제 가능성을 담보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은 1986년 9월∼1991년 4월 경기 화성 일대에서 부녀자 10명이 연쇄적으로 성폭행 당한 뒤 살해당한 사건이다. 유력 용의자는 강간 살인죄 무기수로 복역 중인 50대 남성으로 DNA 분석을 통해 밝혀졌다. 용의자는 경찰 조사에서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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